신선놀음이 펼쳐진 바위 위
계곡 깊숙이 스며든 생명의 숨결
전북 장수, 해발 1,200m 장안산 자락
“이런 곳에 어떻게 글씨를 새겼을까.” 깎아지른 절벽 끝, 물안개 피어오르는 계곡 아래서 고개를 든 이들이 저마다 같은 의문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바위를, 누군가는 물소리를, 또 다른 누군가는 머릿속 풍경을 오래 붙잡는다.
방화동 생태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정제된 듯 신비로운 용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빠 용과 엄마 용, 어린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 그 이야기 하나에 걷던 걸음이 멈춰선다.
울창한 장안산 군립공원 입구에서 시작된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다. 야생화가 흔들리는 너덜지대와 계곡의 물길을 지나며, 전설과 신화, 상상이 한겹씩 덧입혀진다.
깊어질수록 말소리는 줄고, 자연의 숨결만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그 순간, 이 길은 ‘생태길’이 아닌 ‘시간의 터널’이 된다.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계곡 깊숙이
장안산 덕산계곡 속으로 들어서면 목재 데크길이 나타난다. 맑은 물이 흐르고 양옆엔 돌탑과 너덜지대가 펼쳐진다. 이곳은 단지 자연이 아니라 생명의 터전이다. 멸종위기종과 보호종, 천연기념물들이 이곳에 깃든다.
걷다 보면 만나는 아랫용소와 윗용소.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이 두 소(沼)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선다.
윗용소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은 신선이 바둑을 두고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만든다. 그 넓은 바위 위에 앉아 한숨 돌리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새삼 실감난다.
용소를 지나면 길은 양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아찔한 경로, 왼쪽은 편안한 산책로. 징검다리를 통해 양쪽을 오가며 다양한 길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폭포 소리가 점점 커진다. 방화폭포다. 인공폭포지만 그 시원함과 웅장함은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110m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더위를 잊게 만든다.
다만, 이 폭포는 용림제에서 물을 끌어와 인위적으로 흘려보내는 만큼 시간을 맞춰야 감상할 수 있다.
방화동가족휴가촌에 들어서면 풍경이 다시 한 번 바뀐다. 오토캠핑장, 숙박시설, 목재체험관이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족 단위 휴양지다.
숲속 숙박시설에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잠시 쉬어가며 걷기 좋게 꾸며진 산책로를 즐길 수 있다.
살아있는 명품 숲길, 다시 걷고 싶은 길
방화동 생태길은 2019년 산림청이 선정한 ‘걷기 좋은 명품 숲길 20선’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호남에서 유일하게 뽑힌 이 길은 그 명성에 걸맞게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절경을 자랑한다.

왕복 10km, 약 4시간이 소요되는 이 순환형 코스는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이, 가을이면 억새와 단풍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장수공용버스터미널에서 덕산행 버스를 타고 ‘용림제 삼거리’에서 내리면 시작점에 닿는다. 입장료가 필요한 방화동 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
방화동 생태길은 단순한 걷기 코스를 넘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공간이다. 바위에 새겨진 전설, 흐르는 물에 비친 숲의 그림자, 그 모든 것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곳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마치 신선이 바둑을 두다 잠시 낮잠이라도 든 듯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