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암 분지에 핀 기적의 생태계
세계가 인정한 습지, 지역이 키운다
문경 돌리네, 보호에서 체험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는 땅에 어떻게 습지가 만들어졌을까.’ 돌리네라 불리는 석회암 지형 위, 그것도 산 정상에 자리 잡은 작은 웅덩이 하나가 전 세계 생태학자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경북 문경시 산북면 굴봉산 정상부에 위치한 ‘문경돌리네습지’. 겉보기엔 조용한 산속 습지 같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생물다양성과 지질학적 가치가 놀라울 정도다.
흔히 습지 형성과 거리가 먼 석회암 지형에 습지가 자연적으로 형성됐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사례다.
이 습지는 땅속에 테라로사라 불리는 석회암 풍화토가 미세하게 쌓이며 불투수층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연중 물이 고이는 특성을 지니게 됐다.
2011년 환경부와 국립환경과학원이 실시한 생태·경관 우수지역 조사 과정에서 처음 알려졌고, 2017년 6월 15일 국가습지로 지정되며 보호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024년 2월 2일, 마침내 우리나라 25번째이자 경북 최초의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며 세계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내 유일한 ‘돌리네 논습지’의 비밀
‘돌리네’는 석회암 지형에서 빗물이나 지하수가 탄산칼슘을 녹이며 오목하게 형성된 접시 모양의 땅이다. 보통은 배수가 빨라 습지가 형성되기 어려운 지형이다.
그러나 문경돌리네습지에서는 유일하게 이 접시형 땅에 물이 고여 습지가 만들어졌고, 논농사까지 가능할 정도의 수분이 연중 유지된다.

이곳의 면적은 약 49만㎡로, 규모만 보면 그리 크지 않지만 생물다양성만큼은 국내 최대급이다. 심지어 면적이 3배나 큰 대암산 용늪보다 더 많은 생물종이 서식한다.
육상·초원·습지 생태계가 공존하는 이곳에는 총 932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으며, 멸종위기종만 8종에 이른다.
1급 보호종인 수달을 비롯해 담비, 삵, 하늘다람쥐, 팔색조, 붉은배새매, 구렁이, 물방개 등이 이 습지에서 생존의 끈을 잇고 있다.
식물 역시 희귀종의 보고다.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들통발, 쥐방울덩굴 등 4종의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으며, 이는 산림청이 따로 보호 식물로 지정하고 있을 정도다.
탐방센터 준공… 생태관광 거점으로
문경시는 세계적으로도 희소한 이 습지를 단지 보존에만 그치지 않고, 시민과 여행객 모두가 생태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습지의 생태와 가치를 소개하는 전시실과 방문객 참여가 가능한 체험실을 갖춘 탐방센터를 새롭게 완공했다.
이곳에서는 돌리네 지형의 형성과 습지 생태계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가 운영될 예정이며, 아이들과 가족 단위 탐방객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준비 중이다.
문경시는 이 탐방센터를 중심으로 생태관광 기반을 하나씩 넓혀가고 있다. 주차 공간 확보와 더불어 숙박 연계 프로그램, 계절별 습지 해설 탐방, 생물 관찰 투어 등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보존과 체험이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생태관광지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자연을 걷는 길, 그리고 시간을 건너는 경험
문경돌리네습지는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안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습지투어’ 프로그램과 산책로도 마련돼 있다.
걷기 난이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3개의 코스가 있으며, 가장 짧은 A코스는 1km 구간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B코스는 1.7km(1시간 30분), 습지를 둘러싸고 걷는 전체 둘레길은 약 3.2km로 2시간 반이 걸린다.
운영 시간은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겨울철인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입장은 무료지만, 사전 예약제 프로그램이나 보호 구역에 대한 접근은 제한될 수 있다. 정해진 탐방로 외에 무단출입은 자연 훼손의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해가 잘 드는 한낮엔 초록이 짙게 우거지고, 비라도 내리는 날엔 이끼 낀 바위와 고요히 고인 물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 습지는, 단지 관광지가 아니라 생명의 역사와 자연의 지혜를 오롯이 담고 있는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