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무건리 이끼폭포,
초록빛에 물든 태고의 비경을 걷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도계읍의 깊은 산중, 육백산 자락을 따라 걷다 보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았던 전설 같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무건리 이끼폭포다.
1,244m 높이의 육백산은 정상이 평평해 ‘조 600석을 뿌릴 수 있을 정도’라 하여 그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을 지닌 산으로, 첩첩한 능선을 타고 이어진 도계 무건리는 한때 호랑이가 출몰하던 미지의 숲이었다.
이 깊은 산골짜기, 두리봉과 삿갓봉 사이에 자리 잡은 이끼폭포는 그 오랜 세월 외부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던, 숨겨진 청정 자연의 보고다.

특히 여름철이면 이끼폭포는 그야말로 초록의 신비로 물든다. 바위 하나하나를 촘촘히 뒤덮은 진한 이끼와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 그리고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무더위를 씻어낸다.
이끼폭포는 상단과 하단 두 구간으로 나뉘며,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닌다. 하단 폭포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진정한 비경은 상단에 숨겨져 있다.
상단 폭포는 깎아지른 듯한 석회암 협곡 안에 자리해 빛조차 닿기 어려운 고요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용소’라 불리는 깊고 신비로운 물웅덩이와 ‘용소굴’이라는 바위굴이 숨어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용소굴 옆으로 뿜어져 나오는 물안개와 물줄기가 신비로운 풍광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한다.

무건리 이끼폭포까지의 접근은 어렵지 않다. 산기길의 석회광산을 지나 소재말 마을에서 산행이 시작되며, 큰말을 지나 용소까지는 왕복 8km,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다.
임도와 옛길이 잘 정비돼 있어 경사가 완만하고 걷기 편한 데다, 과거 이곳에서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 터를 지나며 오랜 시간을 품은 자연과 사람의 흔적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벼랑과 계곡이 이어진 길은 오지 전문 산꾼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되겠지만, 일반 방문객은 비교적 안전하고 여유로운 옛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숨은 비경으로만 알려졌던 이끼폭포는 2000년대 들어 사진작가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화 <옥자>의 촬영지로 주목받기도 했던 이곳은, 여전히 상업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본연의 자연미를 유지하고 있다.

섬세한 초록빛 이끼, 절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 그 아래로 음울하게 웅크린 용소까지. 모두가 한 장의 동화 속 풍경처럼 이어져 보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게 한다.
육백산 무건리 이끼폭포는 단순한 산행지를 넘어, 시간과 계절이 빚어낸 깊고 조용한 사색의 공간이다. 더위에 지친 마음을 쉬게 하고 싶다면, 삼척의 이 오지로 떠나보자. 이 여름, 누구보다 특별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