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정신을 닮은 붉은 꽃
산청 덕천서원의 백일홍이 피었다

조용한 서원 한켠에 붉은 꽃잎이 폭죽처럼 터졌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137에 위치한 덕천서원은 지금, 활짝 핀 배롱나무꽃으로 여름의 절정을 알리고 있다.
8월 초만 해도 꽃망울을 머금고 있던 나무는 이제 가지마다 진분홍빛으로 빛나며, 사진작가와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덕천서원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유학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서원이다.

선조 9년인 1576년에 세워진 이후, 광해군 원년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어 조정의 공인을 받았고, 일제강점기를 지나 1930년대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 신문, 강당, 동재와 서재 등 전통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따르는 이 서원은 지금은 교육 기능보다는 제사의 공간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런 고요한 공간을 여름이면 은은하게 물들이는 존재가 바로 배롱나무꽃, 일명 백일홍이다. 약 100일 동안 붉은 빛을 머금는 이 꽃은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며, 전통적으로 충신이나 열사를 기리는 장소에 자주 식재되어 왔다.
덕천서원의 배롱나무 역시 선비 조식 선생의 정신을 상징하듯, 한여름 햇살 속에서도 붉은 꽃을 피워낸다.

서원의 오래된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피어난 꽃은 그 자체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덕천서원은 그 자체로 역사와 자연, 사색이 공존하는 공간이지만, 지금처럼 배롱나무가 만개한 시기에는 특히 추천할 만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은 햇살, 살랑이는 여름 바람, 그리고 그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난 백일홍이 어우러지는 풍경은 잠시나마 시간을 멈춘 듯한 정적과 여운을 선사한다.
남명 조식 선생은 관리들의 부패를 통렬히 비판하고, 유사시를 대비해 제자들에게 천문·지리·병법 등 실용학문을 가르쳤으며, 그의 문하에서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수많은 의병장이 배출되었다.

배롱나무꽃이 남명의 정신과 닮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지금 이 여름, 그 절개와 품격을 닮은 붉은 꽃을 직접 마주하고 싶다면 산청 덕천서원을 찾아보자.
여름의 더위는 잠시 잊고, 선비의 자취와 꽃의 우아함 속에서 고요한 시간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