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잘 모를 걸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배롱나무 명소

고려 유민의 충절이 살아 숨 쉬는 꽃길
함안 고려동 유적지
배롱나무
출처 : 함안군 (고려동 유적지)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2길 53에 위치한 고려동 유적지는 이름부터 이색적이다. 조선왕조가 시작된 이후에도 고려의 유민으로서 절의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이곳을 거처로 삼은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 선생의 정신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마을이다.

그는 고려가 멸망하자 담을 쌓고 ‘고려동학’이라는 비석을 세운 뒤 이곳에서 조용히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후손들 역시 그의 뜻을 지켜 600여 년간 이곳을 지켜왔고, 그러한 배경 덕분에 고려동이라는 지명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배롱나무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고려동 유적지)

현재 고려동 유적지에는 한국전쟁 전까지 존재했던 정자와 담장, 종택, 정자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일부는 소실된 상태지만 여전히 이오 선생의 생가로 알려진 주택과 후손들이 거주하는 마을이 역사적인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고려 유민의 자긍심이 서린 이 마을은 오늘날 경상남도 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곳이 여름이면 또 다른 이유로 주목받는다. 바로 붉은 배롱나무꽃이 유적지 곳곳을 물들이기 때문이다.

고택의 기와와 담장, 오래된 나무가 어우러진 마당에 배롱나무가 붉은 꽃잎을 흩날리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정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배롱나무
출처 : 함안군 (고려동 유적지)

7월부터 100일 동안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라고도 불리며, 고택과 함께 사진을 남기기에 최적의 배경이 된다.

최근에는 SNS를 중심으로 인생샷 명소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진작가들과 여행자들이 하나둘씩 찾고 있다.

고려동 유적지는 단순한 꽃놀이 장소가 아니다. 함안군은 이 일대를 역사문화 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해 ‘고려동과 퇴계선생길’ 정비를 마쳤다.

총 3.8km 길이의 이 길은 고려동 유적지를 중심으로 삼우대, 삼절각, 경도단비 등 다양한 유적지를 연결하며, 1533년 퇴계 이황 선생이 삼우대를 방문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배롱나무
출처 : 함안군 (고려동 유적지)

탐방로 곳곳에는 관광안내판과 방향표지가 설치돼 있어 방문객들이 옛 선현들의 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다.

또한 현장에서는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역사 해설 프로그램은 물론, 고려시대 의복 체험, 고려전답에서 생산된 연잎밥 시식, 무사 체험 등도 운영된다. 덕분에 이곳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닌, 오감으로 느끼는 역사 체험형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아직 잘 모르는 조용한 배롱나무 명소, 그리고 선조의 절의가 서린 땅. 함안 고려동 유적지는 역사를 따라 걷고, 꽃과 함께 쉼을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여름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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