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명소에서 해탈의 길을 걷다
여수 향일암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로 1, 돌산도의 끝자락에 자리한 향일암은 연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대표적인 명소다.
그저 사찰이라는 명칭 하나로는 이곳의 매력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남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자,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는 기도의 장소,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감싸는 특별한 공간이 바로 향일암이다.
향일암은 원래 신라 시대 원효대사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창건한 원통암이 그 시작이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윤필대사가 금오암이라 이름을 바꿨고, 조선 숙종 41년인 1715년에는 인묵대사가 이곳의 눈부신 일출 풍경에 감명받아 ‘해를 향한다’는 뜻의 향일암으로 개칭했다.

이름처럼 향일암은 일출 명소로서도 손꼽히며, 해마다 수많은 이들이 새해 소망을 품고 해돋이를 보러 이곳을 찾는다.
향일암에 오르기 위해선 남해의 푸른 바다를 옆에 두고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과, 40도에 가까운 가파른 돌계단을 거쳐야 한다.
그 여정 중간에는 몸을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바위 틈의 석문(石門)이 나타나는데, 마치 겸손한 마음으로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러 가는 ‘해탈의 문’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석문과 해탈의 길을 지나면 기암괴석 절벽 위에 우뚝 선 향일암 대웅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향일암이 위치한 금오산은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산의 형상이 마치 거북이 등이 경전을 이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듯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향일암을 영구암(靈龜庵)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암괴석 사이에 들어선 암자와, 그 사이로 난 동백나무 숲은 절경을 이루며 남해의 정취를 완성한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라는 점에서도 향일암은 더욱 각별하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도운 승려들의 거점이기도 했던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역사와 신앙, 자연이 공존하는 깊은 울림의 공간이다.
2009년 화재로 대웅전과 종각이 소실되었지만, 2012년 복원되어 현재는 예전의 정취를 다시금 품고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돌계단, 나무 그늘 아래 드리워지는 햇살, 해탈문을 통과해 맞이하는 향일암의 풍경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비우고 채우는 여정이 된다. 여름에는 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이, 겨울에는 설렘 가득한 해맞이 인파가 이곳을 찾는다.
누군가의 시작을 위한 기도, 누군가의 치유를 위한 고요, 혹은 단순한 휴식을 위한 여정. 그 모든 이유가 향일암에 닿는다면, 그곳은 이미 여행이 아니라 하나의 깨달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