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600년 역사의 무대
특별 전시와 전각 개방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 있었지만, 쉽게 닿을 수 없었던 공간은 때로는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우듯 우리 앞에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궁궐 또한 긴 세월을 거치며 왕의 거처에서 백성의 공간으로, 그리고 다시 역사와 문화의 장으로 변모해왔다.
깊은 나무 그늘처럼 조용히 이어지던 궁궐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다시 빛을 얻어 살아난다.
멀게만 느껴졌던 역사가 오늘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특별한 경험이 시작된다. 이제 그 숨결을 가까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동궐의 시간을 여는 전시

서울 종로 창경궁 집복헌에서는 궁궐의 지난 600년 발자취를 담아낸 상설 전시가 새롭게 문을 연다.
이 전시는 세종이 태종을 위해 지은 수강궁에서 비롯된 창경궁의 시작부터, 성종 대에 확장되며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리던 시절을 조명한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선 ‘창경원’으로 격하된 아픈 기억, 그리고 광복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위상을 되찾기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관람객은 왕의 집무실, 왕실 여성들의 생활 공간, 세자의 배움터, 국가 의례가 치러지던 장소 등 궁궐의 다양한 기능을 기록과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훼손 흔적과 그 복원 과정을 담은 자료는 궁궐이 지나온 굴곡진 시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전시는 청각·시각 장애인을 위해 수어 해설과 점자 안내책자도 제공해, 누구나 역사 현장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영춘헌, 기억의 전각을 열다

전시와 더불어 평소 발길이 닿을 수 없었던 영춘헌이 특별히 개방된다. 집복헌 동쪽에 자리한 작은 전각인 영춘헌은 정조가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검소한 삶을 실천한 정조는 이곳을 사치 없이 사용했으며, 빗물이 새어도 수리하지 않고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그는 무더운 여름날 종기로 병세가 깊어져 결국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춘헌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임금의 삶과 철학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개방에서는 헌종 14년, 즉 1848년의 ‘무신진찬의궤’를 기반으로 한 왕실 연회 장면이 증강현실을 통해 재현된다.
태블릿 화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연회의 모습은 당시의 화려함과 장중함을 현장감 있게 전한다.
또한 ‘동궐도’ 속 창경궁 전각을 찾아 스티커로 완성하는 체험, 사진 촬영 공간과 휴식 공간도 함께 마련돼 있어 관람객들에게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살아 있는 궁궐, 미래로 잇는 길
창경궁은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보여주는 장소가 아니다. 이번 전시는 궁궐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와 문화의 장임을 알리는 기회가 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전시와 프로그램을 통해 창경궁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앞으로도 궁궐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겠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11월 16일까지 운영되며, 누구나 사전 예약 없이 참여할 수 있다. 전시와 체험은 무료로 제공되며,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창경궁이 걸어온 600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 속에서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특별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