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숨결이 깃든 흙의 예술
천년을 다시 빚는 김해의 시간
분청으로 피어나는 도자기의 도시

가을의 끝자락, 흙이 품은 온기가 도시에 번진다. 들숨마다 은은한 흙내가 스며들고, 익숙한 듯 낯선 빛깔의 도자기들이 햇살 아래 반짝인다.
이곳에서는 수백 년을 이어온 장인의 숨결이 손끝에 머물며, 흙은 예술이 되고 불은 생명이 된다.
김해의 가을은 그렇게 도자기의 온기로 완성된다. 올해 역시, 그 고요하고 깊은 예술의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흙으로 잇는 천년의 시간
‘분청, 다시 빚는 천년의 예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오는 11월 4일부터 9일까지 김해분청도자박물관과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일원에서 펼쳐진다.
흙을 다루는 장인의 손끝과 가야의 문화가 어우러지는 이 축제는 관람객들에게 한국 도자 예술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운다.
김해는 조선 초기 분청사기의 본고장이자, 가야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자문화의 맥이 살아 있는 도시다. 분청사기는 백토를 입혀 장식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소박하면서도 회화적인 미를 지닌다.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명명한 ‘분장회청사기(紛粧灰靑沙器)’라는 이름처럼, 흙과 불이 만들어내는 그 은근한 빛은 한국적인 미의 정수를 담고 있다.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이러한 분청의 아름다움을 재조명하며,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감성을 잇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경기도 이천의 백자, 전남 강진의 청자가 정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김해의 분청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생활 속 미학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세종의 시간, 분청의 예술로 피어나다

지난해 축제는 ‘분청의 시간, 세종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도예 명인들의 작품 전시를 비롯해 도자기 빚기, 전통 가마 체험, 찻사발 제작 등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 도자기 만들기 대회’, 흙을 높이 쌓는 체험, 대형 도자기 제작 시연까지, 흙의 질감과 온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또한 ‘세종 태항아리 특별전’과 ‘분청도자존’, 전국 공모전 전시 등은 분청도자의 예술성과 창의성을 함께 보여주며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축제 기간 동안 돔하우스 전시관을 비롯한 미술관 일대는 도자 예술의 장으로 변모했고, ‘조선유랑극단’과 거리 버스킹 공연은 흙과 음악이 어우러진 풍경을 완성했다.
당시 축제 관계자는 “분청의 본질은 단순히 도자기 제작에 있지 않고, 시대를 넘어 전해지는 미의식과 생활정신에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김해의 분청은 단순한 공예를 넘어 한 시대의 문화를 품은 예술로 이어지고 있다.
김해, 도자기의 도시로 거듭나다

김해의 분청도자기는 약 2천 년 전 가야의 토기 제작 기술에서 비롯되어 조선시대 생활자기의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전쟁의 격동기를 지나며 한때 명맥이 끊어졌던 이 전통은, 약 40여 년 전 도공과 학자들의 노력으로 다시 불씨가 되살아났다.
이후 김해는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도자기 생산지로 성장하며,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분청도자기촌으로 자리 잡았다.
이 축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김해가 가진 도자문화의 역사와 정신을 세상에 알리는 장이다.

특히 시민과 도예인, 예술가가 함께 참여하는 개막 퍼포먼스와 30주년 기념 전시는 김해 도예의 역사를 기념하는 상징적인 행사로 평가받았다.
또한 AR 스탬프 투어, 미니열차, 다도 피크닉 등 세대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련되어 남녀노소 모두가 도자기의 매력을 체험했다.
올해 2025년 김해분청도자기축제 역시 이러한 전통을 잇되, 새로운 주제와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현재 구체적인 행사 내용은 업데이트 중이지만, 매년 깊어가는 가을에 흙과 불이 어우러지는 김해의 풍경은 변함없이 따뜻할 것이다.
천년의 예술, 다시 빚는 김해의 가을

흙이 불을 만나 예술이 되고, 시간이 문화를 품는 도시. 김해는 오늘도 도공들의 손끝에서 천년의 예술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분청의 은은한 색조는 계절의 끝에 피어나는 한 송이의 빛처럼, 오래 머물수록 그 아름다움이 깊어진다.
올해 김해를 찾는다면, 흙이 빚어낸 예술의 도시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보길 권한다. 김해의 가을은 그 자체로 한 점의 도자기처럼, 묵직하고 따뜻하게 빛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