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가을을 담은 기린봉
한옥마을 곁, 달빛 오르는 산책길
도심 속에서 만나는 청량한 고요

가을이 머문 전주는 낮에도 따뜻하지만, 저녁이면 산들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도시의 불빛이 번지는 시간, 고요히 솟은 한 봉우리가 달빛을 머금은 듯 빛난다.
발걸음을 옮기면 풀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와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일상의 무게를 잊게 만든다.
이름만으로도 상서로움을 품은 그곳, 예로부터 ‘기린이 달을 토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전주의 기린봉이다.
달을 삼킨 듯한 전주의 봉우리

기린봉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우아동과 풍남동에 걸쳐 있는 해발 307m의 산으로, 전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높이는 아담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전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그 시원한 조망이 큰 매력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기린이 달을 토해낸다’는 뜻의 기린토월(麒麟吐月)이라 불리며, 전주의 열 가지 절경 중 하나로 손꼽혀왔다.
산의 형세가 기린이 여의주, 즉 달을 품은 듯해 예로부터 제를 올리던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지금은 도심과 자연이 어우러진 산책 명소로 사랑받는다.
가볍게 오르는 산, 풍경은 웅장하다

기린봉의 등산로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다. 인후동 기린공원에서 오르는 길은 대중교통 접근이 편리하고, 아중체련공원 방향은 차량 이용객이 선호한다.
어느 코스를 택해도 약 20~3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어 등산 초보나 가벼운 산책을 원하는 이들에게 알맞다.
숲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가 길동무가 된다. 곳곳에 놓인 작은 정자와 쉼터는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르기에 좋다.

가을이면 산길은 단풍빛으로 물들고, 겨울 초입엔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어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린다.
정상에 서면 전주 시내와 한옥마을, 그리고 멀리 아중호수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이곳을 자주 찾는 한 시민은 “도심 가까운 곳에서 이렇게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며 “가벼운 산책으로 마음까지 맑아지는 곳”이라 전했다.
전주의 밤을 밝히는 달빛 명소

기린봉의 매력은 낮보다 밤에 더욱 빛난다. 해가 지면 전주 시내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그 위로 달이 떠오르며 봉우리를 은빛으로 물들인다.
이 풍경이 바로 옛사람들이 ‘기린이 달을 토한다’고 표현한 이유다. 정상에서는 전주한옥마을의 지붕들이 한 줄로 이어지며 고즈넉한 윤곽을 드러낸다.
도시와 자연이 맞닿은 풍경은 전주의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함을 보여준다. 일출 시간에 맞춰 오르면 붉은 빛이 동쪽 하늘을 물들이며, 한옥 지붕 사이로 퍼지는 햇살이 장엄한 아침을 선사한다.
한옥마을과 함께 즐기는 도심 속 휴식

기린봉은 한옥마을과 지척에 있어, 전주 여행의 여유로운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전동성당이나 경기전 등 한옥마을 주요 관광지를 둘러본 뒤, 늦은 오후에 기린봉을 오르면 자연스럽게 전주의 하루를 완성할 수 있다.
산책을 마친 뒤에는 아중호수나 동고사, 전주자연생태박물관 등 인근 명소로 발길을 옮기면 좋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품은 기린봉은, 가을에는 붉은 단풍으로, 겨울에는 하얀 서리로 전주의 사계를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는 산이다.
기린봉은 그 높이보다 마음을 높여주는 산이다. 도심 가까이에서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그 길.
전주의 하늘 아래, 달빛을 품은 기린봉에서 계절의 변주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