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가까운 산사로의 짧은 여행
단풍 물든 가을, 고요한 수행길
지하철로 닿는 천년의 고찰

붉게 물든 단풍이 산자락을 타고 번지면, 금정산 자락의 공기는 어느새 묵직한 향기로 채워진다. 도심의 소음은 멀어지고, 바람결에 섞인 목탁소리가 마음을 단정히 세운다.
부산의 한복판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진 곳이지만, 그곳에 발을 딛는 순간 시간의 속도가 느려진다.
오래된 절집의 기둥 사이로 스미는 햇살은 그저 따스할 뿐, 세속의 분주함은 더 이상 닿지 않는다. 그렇게 한 걸음씩 오르면, 어느새 범어사에 이른다.
천년 고찰, 금정산에 깃든 이야기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십찰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해동의 화엄사상을 전한 대표적인 사찰로, 해인사·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린다.
금빛 물고기가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에 놀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금정산의 이름처럼, 이곳은 신비로운 이야기를 품은 산사다.
이 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이자 ‘선찰대본산 금정총림’으로 불린다. ‘선찰대본산’이란 마음의 근원을 찾는 수행도량을 뜻한다.

범어사는 오랜 세월 동안 고승대덕들의 수행처로 자리해 왔다. 경허선사, 만해 한용운선사, 동산스님 등 한국 근대불교의 대표 인물들이 머물며 참선과 수행의 길을 걸었다.
1950년대 동산스님이 이끈 불교정화운동은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범어사는 수행의 전통을 이어가며 공간을 확충해 왔다.
2019년에는 선문화교육관이 완공되었고, 2021년에는 전국 사찰 중 최대 규모의 성보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오랜 역사 속에서도 쉼 없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것이다.
도심 속 산사, 일상에서 벗어나는 한 걸음

범어사의 가장 큰 매력은 ‘가까움’에 있다. 부산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범어사역에 내린 뒤,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곧장 도착할 수 있다.
대중교통만으로도 접근이 쉬워 주말 나들이나 짧은 산책 코스로 찾는 이가 많다. 주차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자가용 방문객에게도 편리하다.
도심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져 있지만, 절문을 들어서면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 산새 소리가 잔잔히 깔리고,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는 방문객들의 발자국이 경내의 고요함을 채운다.

특히 가을에는 단풍이 수묵화처럼 절집을 감싸, 사진 한 장에도 계절의 온기가 담긴다.
한 방문객은 “도심과 가깝지만 절 안으로 들어서면 완전히 다른 세상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는 “가족과 함께 단풍을 보며 천천히 걷기 좋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 머물러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곳이 수행의 숨결을 품은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행의 향기와 현대의 숨결이 공존하는 곳

범어사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금도 수행이 이어지는 살아 있는 사찰이다.
사찰 내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며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역사와 유래를 깊이 이해할 수도 있다.
화엄경의 이상향처럼 서로 돕고 이해하며 청정한 삶을 실현하고자 한 의상대사의 뜻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범어사 곳곳에는 그 철학이 스며 있다.
대웅전의 섬세한 단청, 경내를 감싸는 숲의 정적, 그리고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들은 모두 천년의 수행이 남긴 흔적이다.
범어사는 화려함보다 단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머물러 보기만 해도 마음이 고요해지고, 세상의 복잡함이 잠시 멀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