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산자락의 명상길
자연과 조형미가 어우러진 절
함안에서 만나는 특별한 사색

가을빛이 깊어질수록 산자락은 고요를 품는다. 그 속에서 들리는 건 나뭇잎 스치는 소리와 바람의 숨결뿐이다.
사람의 목소리 대신 새의 울음이 어깨를 스치고, 마음은 점차 맑아진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낯설 만큼 이국적이지만, 놀랍게도 그곳은 멀리 외국이 아닌 경남 함안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깃든 산 아래, 한적한 사찰 한 곳이 조용히 방문객을 맞이한다.
절벽 위에 세운 특별한 사찰, 마애사

함안군 군북면 하림마을 끝자락, 방어산의 품 안에 자리한 마애사는 이름부터 남다르다. ‘절벽을 깎아 세운 절’이라는 뜻 그대로, 산의 암반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자리하고 있다.
1995년 무진 스님이 불사를 시작해 세워진 이 사찰은 전통과 현대의 감각이 교차하는 독특한 공간이다.
법당과 불상, 석조물이 절도 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깨끗하게 정돈된 마당은 마치 예술관을 걷는 듯한 인상을 준다.
특히 사찰 중심에 세워진 거대한 청룡 조형물과 도자기 형태의 윤회의 탑은 방문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진 청룡상은 하늘을 향해 솟구치듯 생동감을 자아내며, 흙빛 윤회의 탑은 인간의 삶과 순환의 의미를 상징한다.
이곳은 단순히 불교 신앙의 터전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예술 감각이 함께 어우러진 조형의 공간이다.
바람이 부는 방향마다 청룡의 비늘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그 옆으로 도자기 탑의 유려한 곡선이 고요함을 완성한다.
방어산과 함께 걷는 사색의 길

마애사는 방어산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산은 높지 않지만 곳곳에 암반이 드러나 있어 오르는 길마다 각기 다른 풍경을 품는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지리산의 윤곽이 아련히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여항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옛 기록에 따르면 병자호란 때 묵신우 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고 적을 막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장군이 타던 말의 핏자국이 여전히 바위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등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애사에서 출발해 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약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 길지 않지만 오르는 동안 보게 되는 풍광은 단조롭지 않다.

산의 7부 능선에 자리한 높이 5미터의 방어산 마애불은 이 지역의 보물로, 거대한 바위면에 새겨진 부처의 모습이 세월의 흔적을 품은 채 서 있다.
햇살이 비칠 때면 부처의 얼굴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보는 이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괘방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을 택하면 다섯 시간 남짓 걸리는 긴 산행이 가능하다. 길 위에서 만나는 흔들바위와 마당바위, 그리고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담긴 끄덕바위는 또 다른 볼거리다.
산세가 크지 않아도 능선의 굴곡과 바위의 형태가 주는 웅장함은 결코 작지 않다.
조용한 마음의 쉼표, 함안 여행의 묘미

마애사의 매력은 화려함보다 고요함에 있다. 경내를 거닐다 보면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이 저절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법당 앞 석불상에 잠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면, 복잡했던 생각이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이곳에서 들리는 건 오직 자연의 소리뿐이다.
사찰을 둘러싼 숲은 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며, 그 변화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의미가 새로워진다.
마애사 앞에는 작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이 편리하다. 입장료는 없으며,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함께 둘러보면 좋은 함안의 이웃 풍경

마애사를 중심으로 하루 일정의 함안 여행을 계획한다면 주변 명소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입곡군립공원에서는 출렁다리와 수상 자전거로 자연의 활력을 느낄 수 있고, 말이산 고분군과 함안박물관에서는 아라가야의 찬란한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이렇듯 마애사는 단순한 ‘절 방문’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공간, 그리고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여행지로서 함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조용한 산사 한 곳을 찾고 있다면, 함안 마애사가 딱이다. 경남의 고즈넉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 청룡상 앞에 서는 순간,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가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