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숨은 역사와 자연의 조화
가을빛 아래 빛나는 강변의 정자
무료로 즐기는 고즈넉한 산책

가을 햇살이 강변 위를 부드럽게 스친다. 바람은 오래된 나무 사이를 지나며 잔잔한 소리를 남기고, 그 속에서 한때 선비가 학문을 닦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소란스러움 하나 없는 이곳에는 세월이 남긴 흔적과 자연의 숨결이 함께 깃들어 있다. 이름보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그 고요함이며, 가까이 다가서면 비로소 알게 된다.
이곳이 단순히 강가에 자리한 한 정자가 아니라, 수백 년의 세월을 품고 옛 선비들의 숨결과 시대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장소임을.
강변 따라 이어지는 고요한 정취

밀양강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강변의 푸른 빛과 나란히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금시당의 풍경을 완성한다.
금시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광진 선생이 만년에 머물며 학문과 수양에 힘썼던 별업으로, 1566년에 처음 세워졌다.
당시 그는 나라의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로, 한림옥당과 사헌부 장령, 좌승지 등을 역임하며 청렴과 덕망으로 이름을 떨쳤다.
‘금시당(今是堂)’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시에서 따온 말로, ‘지금의 바름을 깨닫는다’는 뜻을 지녔다.

세속의 번다함을 벗어나 마음을 가다듬고자 한 그의 의지가 이름에 담겨 있다. 그러나 금시당은 창건된 해에 주인을 잃었다.
이광진 선생이 별세하면서 아들 이경홍이 그 뜻을 이어받아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소로 사용했다.
시간이 흐르며 전란의 불길이 이곳을 덮쳤다. 임진왜란 때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그의 5대손 백곡 이지운이 다시 복원했다.
이후 6대손 이용구가 백곡재를 새로 세워 선조의 뜻을 이어가며, 금시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닌 학문과 정신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오백 년을 지켜온 은행나무의 품

정원의 중심에는 한 그루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가지 끝마다 세월의 흔적이 깃든 이 나무는 무려 460여 년을 버텨온 생명의 상징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나무는 이광진 선생이 직접 심은 것으로, 매년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금시당의 정원은 화려함보다 절제의 미가 두드러진다. 작은 연못 하나 없이도 공간 전체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며, 여백이 만들어내는 고요함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이런 정원의 조형미는 조선 선비들이 추구했던 내면의 수양과도 맞닿아 있다. 인공의 손길이 적은 대신 자연이 스스로의 조화를 이루며,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의 여백을 남기게 한다.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풍경, 그리고 무료의 즐거움

금시당은 사유지이지만 방문객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입장료 없이 누구나 찾아갈 수 있다.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성도 좋다.
봄의 신록도 아름답지만, 이곳이 가장 빛나는 계절은 단연 가을이다. 은행나무의 황금빛 잎이 강변의 푸른 물빛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색의 대비는 어느 명소에도 뒤지지 않는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곳곳에서 역사와 자연이 겹겹이 쌓여 전해지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건축적으로도 금시당은 주목할 만하다.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된 건물은 온돌방과 대청마루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초익공형식의 섬세한 구조미가 돋보인다.

대들보와 서까래에는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어 선비의 정신과 미학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오늘의 금시당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다. 오백 년 세월을 지나 지금도 강변의 바람과 함께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조용한 산책길, 황금빛 낙엽, 그리고 역사가 깃든 정자. 그 모든 것을 무료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가을의 끝자락, 한 번쯤은 금시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도 좋다. 소리 없이 빛나는 풍경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