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가을,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시간
고즈넉한 돌담 따라 걷는 유교의 숨결
오래된 향교에서 만나는 계절의 품격

전주의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바람결에 은행잎이 흩날리는 돌담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시의 분주함이 멀어지고, 오직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만이 길동무가 되어준다.
햇살이 낮게 내려앉은 오후, 노란 잎 아래로 느릿한 걸음을 옮기면 세월의 깊이를 품은 건물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은 오랜 세월 학문과 예절을 가르치며, 지금은 가을의 빛으로 더욱 빛나는 전주향교다.
650년의 시간이 깃든 학문의 전당

전주향교는 고려 공민왕 3년, 1354년에 처음 세워진 유서 깊은 교육의 터전이다.
처음에는 풍남동 경기전 북편에 있었으나, 조선 태종 때 태조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경기전이 지어지며 화산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선조 36년, 장만 관찰사의 주도 아래 지금의 위치로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유교 사당이 아니라, 조선시대 지방의 학문과 도덕을 일깨운 상징적인 교육기관이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해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유학의 근본을 이룬 인물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동무와 서무에는 나라의 현인 51위를 봉안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이야말로 전주향교가 ‘호남 유림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며, 오랜 세월 동안 학문과 예절의 전통을 이어온 중심지로 자리해온 이유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글을 익히고 인성을 다듬던 곳으로,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1983년부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일요학교가 운영되며 청소년들에게 윤리와 예절, 한문서예를 가르친다.
여름과 겨울방학마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이 열려, 어린이와 학생들이 전통을 생활 속에서 배우는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노란 물결이 흐르는 가을의 향교

전주향교의 가을은 유난히 고요하고 깊다. 대성전 앞마당에는 400년을 넘긴 은행나무가 서 있다.
굵은 나무줄기는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을 보여주고, 가지마다 물든 잎은 황금빛 비단처럼 흩날린다. 이 계절의 향교는 한 폭의 풍경화와도 같다.
돌담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바람이 은행잎을 흩뜨리고, 햇살은 대청마루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가을이면 ‘구르미 그린 달빛’, ‘성균관 스캔들’ 등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전주향교가 가진 고즈넉한 정취 때문일 것이다.
한옥의 단아한 선과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향교를 둘러싼 돌담은 포근한 시간의 경계처럼 여행자를 감싼다. 담장 너머로 보이는 한옥 지붕 사이로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면, 그 순간의 고요함 속에 오래된 전주의 숨결이 스며든다.
특히 늦가을 오후의 햇살 아래, 향교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긴다면 그 어떤 풍경보다 따뜻한 추억이 될 것이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배움의 공간
전주향교는 단지 옛 건물이 아니라, 지금도 ‘배움의 터’로 살아 있는 공간이다.
일요학교와 예절학교는 지역 학생들에게 인성의 뿌리를 심어주고, 서당 형식의 성인반에서는 누구나 한문을 배우며 마음을 닦을 수 있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예절교육과 시조창 교육도 이어지며, 유교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전통문화의 중심지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향교 내 양사재는 전북 최초의 공립소학교인 전주초등학교의 모태로, 근대교육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전주향교는 조선시대의 학문 공간에서 현대 교육의 씨앗으로 이어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 전주향교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 음성 안내판 등이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다.
가을의 전주향교는 단순히 ‘가볼 만한 곳’이 아니다. 그곳은 시간의 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조용한 배움의 뜰이자 노란 은행잎 아래에서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이다.
천천히 걸으며 바람과 햇살, 그리고 고요한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지금의 전주향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