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품은 신비의 공간
돌과 바람이 빚은 선도의 흔적
가을빛 속 이색 명소 하동 삼성궁

지리산의 품은 언제나 넉넉하지만, 그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깊은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다 보면, 어느새 돌탑이 빚어낸 장엄한 풍경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고요하지만 묘하게 생동감이 감도는 그곳은 세속의 시간과는 다른 호흡을 지닌 듯하다.
이 가을, 사람의 손으로 쌓았으되 신비로운 기운이 흐르는 곳. 하동 청암면의 삼성궁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돌탑이 만든 신선의 길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지리산 깊숙한 품속 해발 850m 자리에 삼성궁이 자리한다.
정식 명칭은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1983년 이곳 출신의 강민주(한풀선사)가 고조선 시대의 제천 성지였던 ‘소도’를 복원하며 세운 공간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근원적 신앙인 선도를 지키고자, 하늘과 인간, 자연이 하나 되는 수행처로 이곳을 일구었다.
삼성궁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신앙의 현장이다.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성전은 고즈넉한 숲속에 자리 잡아, 인간이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순간을 일깨운다.

사방을 둘러보면 1,500여 개의 돌탑이 이어지며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곳에서는 돌탑을 ‘원력 솟대’라 부르는데, 각자 소원을 품고 올린 돌 하나하나가 신성한 기도를 대신한다.
솟대의 기원은 삼한시대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엔 높은 나무 위에 기러기 모양의 깃발을 달아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삼성궁은 그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려, 돌과 바람, 그리고 인간의 의지가 어우러진 거대한 예배의 장으로 완성되었다.
청학동의 시간, 돌에 새긴 바람

삼성궁에 이르는 길은 청학동 산자락을 따라 1.5km 남짓 이어진다. 가을이면 붉고 노란 단풍이 산길을 덮고, 계곡물은 맑게 흘러내린다.
산책하듯 오르다 보면 어느새 사방이 돌탑으로 가득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 돌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정성을 다해 쌓은 신앙의 결과물이다.
한풀선사와 수자들이 40여 년에 걸쳐 돌을 하나씩 올리며 만든 이 풍경은 인간의 의지와 자연의 인내가 함께 빚어낸 조형미를 보여준다.
삼성궁 내부에는 ‘건국전’과 ‘마고성’이 주요 볼거리다. 건국전은 환인·환웅·단군, 즉 삼성(三聖)을 모신 중심 공간이며, 마고성은 신선도를 닦는 수행의 도량이다.

곳곳에 세워진 솟대와 탑, 연못과 계단은 모두 일정한 상징을 품고 설계되었으며, 각각 하늘과 땅, 인간의 조화를 뜻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마고성은 사신(청룡·백호·주작·현무)을 상징하는 네 방향의 돌 구조물로 꾸며져 있으며, 지리산 능선과 맞물려 신비한 조형미를 자랑한다.
가을빛이 깊어질 무렵, 이곳의 돌탑들은 황금빛 햇살을 받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빛난다.
탑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종소리처럼 맑고,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조차 수행자의 발걸음처럼 조용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잊고 있던 자신과 마주한다.
이색 명소에서 만나는 가을의 끝자락

삼성궁은 일반 관광지와 달리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흐른다. 비포장 돌길을 따라 걸어야 하므로 편한 신발이 필수이며, 일부 구역은 탐방 제한 구간으로 지정되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입장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가능하며, 연중 쉬는 날이 없다. 입장료는 일반 8천 원, 청소년 5천 원, 어린이 4천 원이며, 경로와 장애인은 5천 원이다.
주말이면 단풍을 보기 위해 찾는 발길이 이어지지만, 이른 아침 시간대에는 비교적 한적한 분위기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특히 가을철에는 붉게 물든 지리산의 능선과 돌탑이 어우러져 사진 애호가들에게도 인기 있는 명소로 꼽힌다.

삼성궁의 돌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에 바치는 조용한 기도이며, 세월을 견디며 세워진 신념의 기록이다.
돌 하나에 담긴 마음이 모여, 결국은 한 민족의 정신을 지탱하는 거대한 상징이 된 것이다.
지리산 자락 아래, 돌과 바람이 만든 이 신비로운 공간에서 사람들은 묵직한 평온을 얻는다.
올가을, 떠들썩한 관광지가 아닌, 마음이 고요해지는 여행지를 찾는다면 하동 청암면의 삼성궁에서 그 해답을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