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으로 물든 거대한 산의 품
지금, 설악의 절정이 피어오른다
단풍 속에서 만나는 깊은 숨결

해마다 가을이 오면 북쪽의 산이 먼저 붉게 타오른다. 푸른 하늘 아래로 서서히 색을 바꾸는 나뭇잎 사이로, 찬 바람이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비가 잠시 머물러도, 그 사이를 스미듯 번지는 단풍은 여전히 고운 빛을 잃지 않는다.
길게 늘어선 산맥의 능선마다 붉은 물결이 번지고, 그 안에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지금, 그 중심에는 설악이 있다.
유네스코가 품은 산, 자연의 거대한 무대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를 비롯해 고성, 인제, 양양에 걸쳐 있는 설악산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1982년에는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록되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녹색목록에도 이름을 올렸다.
면적만 해도 398㎢에 달해 거대한 산세가 사방으로 뻗어 있다.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은 해발 1,708m로, 한라산과 지리산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해마다 5~6개월 동안 눈으로 덮여 있어 ‘설악(雪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 오르면 동해의 수평선과 설악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며, 일출과 낙조 모두가 장관이다.
대청봉을 비롯해 소청봉, 중청봉, 화채봉 등 30여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산이 품은 깊이를 실감하게 된다.
외설악에는 울산바위, 흔들바위, 금강굴, 비룡폭포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명소들이 즐비하다.
특히 설악산 소공원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노약자나 장애인도 무리 없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의 품은 넓고, 그 안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지금이 절정, 단풍으로 뒤덮인 가을의 설악

지난 주말, 속초의 설악산은 단풍을 보기 위한 인파로 가득했다. 이틀 동안 3만6천 명이 넘는 탐방객이 공원을 찾았고, 천불동 계곡 일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산길을 물들인 단풍빛은 가을의 정취를 충분히 전했다. 수천 개의 봉우리와 만여 개의 바위가 빚어내는 절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이었다.
설악산의 단풍은 올해 평년보다 나흘가량 늦게 시작되어 10월 말 현재 절정을 이루고 있다.

대청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천천히 산 아래로 내려오며, 설악동 입구와 목우재까지 붉은 물결이 이어졌다. 탐방객들의 발길은 새벽부터 끊이지 않았고, 등산로 초입의 주차장들은 하루 종일 붐볐다.
설악산국립공원 관계자는 “최근 낙석으로 일부 암벽 구간을 통제 중이지만, 주요 탐방로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안전조치 속에서도 설악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지금 이 시기, 설악은 그 자체로 가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비와 단풍이 함께 빚은 가을의 장관

비가 내리던 날, 설악의 단풍은 오히려 더 짙은 색을 띠었다. 물기를 머금은 잎들은 한층 더 선명해져 붉음과 노랑, 갈색이 번져가는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산 중턱의 구름은 마치 흰 실오라기처럼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권금성과 천불동 계곡 일대를 신비로운 빛으로 감쌌다.
비룡폭포로 향하는 길은 단풍이 터널처럼 이어져 있었다. 길가의 돌담과 젖은 낙엽이 어우러져 자연이 그린 수묵화 같았고, 폭포 아래에서는 붉은 단풍잎이 물결에 실려 흘러내렸다.

여행객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보며 숨을 고르듯 가을을 느꼈다. 울산바위로 이어지는 능선 또한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다.
금강송 숲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젖은 나뭇잎에 반사되며 황금빛을 띠었고, 먼발치의 토왕성폭포는 하얀 물줄기 사이로 붉은 단풍이 대비되어 더욱 또렷하게 빛났다.
설악의 가을은 맑은 날의 청명함보다, 비와 구름이 머문 날의 은은한 색감 속에서 더욱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지금 떠나야 할 이유

설악의 단풍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찬바람이 한층 깊어지면 붉은 잎은 금세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지금 이 시기가 바로, 설악이 가장 화려하게 타오르는 순간이다. 가을빛으로 물든 산의 품에서 자연이 주는 위로를 느끼고 싶다면, 주저할 시간이 없다.
붉은 산과 은빛 물소리가 어우러진 설악의 가을은 지금, 가장 완벽한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