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평창 오대산의 붉은 시간
가을빛 물든 순례의 길
단풍 따라 걷는 마음의 풍경

산 아래로부터 서서히 물드는 시간이다. 아침 햇살이 능선을 비추면 나뭇잎은 붉고 노랗게 빛나고, 바람에 실린 냄새마저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는 그 깊은 산의 고요함을 깨우며 천천히 퍼져 나간다. 이 계절, 한 걸음만 내딛어도 눈앞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곳.
지금, 가을의 정점에서 만나는 평창 오대산이 그 빛을 완성해가고 있다.
오색빛으로 물드는 오대산의 가을

오대산은 강원 평창을 중심으로 홍천과 강릉까지 걸쳐 있는 산으로,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동대산, 상왕봉, 호령봉, 두로봉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으며, 그 사이로 펼쳐진 숲이 가을이면 오색 단풍으로 뒤덮인다.
단풍나무와 참나무가 빚어내는 색의 층위는 붉은빛에서 황금빛으로, 그리고 다시 갈색으로 이어져 마치 색동옷을 두른 듯 화려하다.
진부역에서 차로 잠시 달리면 오대산의 초입에 닿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세는 거대한 화폭과 같다.
고요 속에 걷는 수행의 길
올해 새롭게 개방된 ‘나옹선사 수행길’은 오대산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길이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시작해 신성암 입구를 지나 북대 미륵암까지 이어지는 4km 남짓한 구간이다.
고려 후기의 고승 나옹선사가 수도하던 길을 복원한 이 탐방로는, 화려함보다 고요함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젖은 낙엽을 밟을 때마다 들려오는 부드러운 마찰음, 물안개 사이로 보이는 이끼 낀 바위,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맑은 계류의 소리가 발걸음을 천천히 이끈다.
사람의 발길이 드문 이 길은 묵상하듯 걸을수록 마음이 차분해진다. 어느새 말수도 줄고, 발소리와 숨소리만이 산의 공기를 가른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수행자가 된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사색의 공간 속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순례의 의미를 품은 산, 오대산
오대산은 오래전부터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불교문화의 자취는 천년 세월 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라 신앙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발걸음이 함께 엮인 순례의 길이다.
최근 오대산국립공원에서는 ‘오대산 순례길 스탬프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탐방객들은 월정사와 상원사, 북대 미륵암 등 주요 사찰과 문화유산을 잇는 경로를 따라 걸으며 자연 속에서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각 지점을 완주하면 기념품과 숙박 혜택이 제공되어, 종교적 의미를 넘어 지역 관광 자원으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이 밖에도 선재길, 비로봉 코스, 소금강산 코스 등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길이 다양하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은 데크로 잘 조성돼 가벼운 산책에 적합하며, 소금강산 코스는 계곡을 따라 이어져 수려한 단풍 경관을 감상하기 좋다.
비로봉 코스는 완만한 능선과 중간중간 나타나는 암반이 어우러져 가장 인기 있는 탐방로로 꼽힌다.
가을의 절정을 걷다

오대산은 우리나라의 11번째 국립공원으로, 백두대간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평평한 능선과 완만한 경사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산행을 즐길 수 있지만, 산의 품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그 웅장함은 더해진다.
노인봉 아래 자리한 소금강 계곡은 바위산과 어우러져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장관을 이룬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10월 중순, 이곳을 찾은 등산객들은 산의 색과 냄새, 그리고 바람 속에 깃든 가을의 온기를 함께 느낀다.
자연이 만들어 낸 붉은 물결 속에서 걷는 이 순간, 가을의 끝자락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