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보다 황홀한 새벽빛”… 진안 ‘부귀산’ 일출 명소로 손꼽히는 이유

운해와 일출이 맞닿은 산
진안의 숨은 가을 명소
천하명당의 기운이 서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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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안개가 천천히 능선을 감싸며 흘러내린다. 이른 새벽의 공기는 아직 차갑지만, 그 속에서 붉은 빛이 번지기 시작한다.

한 줄기 빛이 산마루를 넘어오면, 하늘과 땅의 경계가 금세 바뀐다. 순간의 정적이 깨지며, 세상이 다시 깨어나는 듯하다.

이곳은 일출을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새벽을 택하는 산, 전북 진안의 부귀산이다. 그 이름처럼 ‘부귀’의 기운을 품은 산은 가을의 초입에서 가장 찬란한 얼굴을 드러낸다.

용이 서린 듯한 산, 부귀산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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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부귀산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와 부귀면 수항리 경계에 자리한 해발 806m의 산이다.

금남호남정맥의 한 줄기에 속하며, 마이산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강정골재를 거쳐 이곳으로 닿는다. 동쪽의 금강과 서쪽의 섬진강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산의 형세는 고요하면서도 힘이 있다. 『진안지』에 “용이 서린 듯, 호랑이가 웅크린 듯한 산세이며 대인의 기운이 머문다”라 기록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쪽 사면의 골짜기에서는 금강으로 향하는 물줄기가, 남쪽 사면에서는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장곡천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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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두 강이 갈라지는 그 경계에 서면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지형의 흐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부귀산은 오르는 길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부귀면 대곡마을에서 오르면 부드러운 육산의 능선이 이어지지만, 진안읍 원정곡마을에서 오르면 바위가 드러난 암봉의 산세가 펼쳐진다.

옛날에는 이 산을 ‘백택산’이라 불렀고, 정상에는 상사바위와 세 기의 묘가 자리한다. 마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이곳에 올라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산 이름 ‘부귀(富貴)’가 전하는 뜻처럼, 풍수상으로도 명당의 자리에 놓인 곳이라 전해진다.

일출과 운해가 그리는 진안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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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부귀산의 진면목은 새벽에 드러난다. 특히 정상 부근의 ‘부귀산 전망대’는 진안에서도 손꼽히는 일출 명소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마이산과 덕유산의 능선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운해가 계곡을 가득 메우면 그 위로 해가 떠오른다.

붉게 물든 빛이 안개를 가르고 스며들 때면, 마치 산이 숨을 쉬는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봄에는 연둣빛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여름엔 짙은 초록이 하늘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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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가을이면 노란 단풍이 능선을 따라 물들고, 겨울엔 눈이 쌓여 순백의 정경을 만든다. 그중에서도 가을 새벽은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시간이다.

운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며, 사진가와 등산객 모두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삼각대를 세운다.

전망대는 진안읍 군상리 산129-7에 자리하고 있으며, 입장료 없이 언제든 방문할 수 있다. 길은 다소 험하지만, 진안을 대표하는 명산답게 오르는 길마다 안내 표지가 잘 마련되어 있다.

네비게이션에 ‘고림사’를 입력하면 길이 이어지고, 이후 갈림길마다 ‘부귀산 가는 길’ 표지판이 안내한다.

천하명당에서 만나는 가을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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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부귀산은 단순히 풍경이 아름다운 산에 그치지 않는다. 산의 이름에 담긴 ‘부귀’라는 뜻처럼 예로부터 명당의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에는 양쪽으로 묘가 자리하며, 절벽에도 또 하나의 묘가 있다. 마을에서는 이를 ‘사지앙천(蛇之仰天)’, 즉 뱀이 하늘을 우러러보는 형상이라 불렀다.

가을날 부귀산을 찾는 이들은 단풍의 색보다 운해의 움직임에 마음을 빼앗긴다. 구름처럼 피어오른 안개는 마이산의 봉우리를 감싸며 빛에 따라 시시각각 형태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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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북 진안 부귀산 일출)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부귀산 전망대다. 해가 오르며 붉은 기운이 점점 옅어질 때, 산 아래 마을의 지붕이 서서히 드러나고,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진안의 아침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부귀산의 새벽을 마주해보길 권한다. 여느 산보다 조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풍경의 깊이는 결코 작지 않다.

부귀산의 일출은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선물이자, 가을 진안이 건네는 가장 따뜻한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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