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가을이 머무는 곳
천년의 배움이 깃든 명륜당
무료로 즐기는 황금빛 산책

바람이 서늘해질 무렵, 서울의 하늘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종로의 오래된 골목 끝에서 눈부신 빛을 내는 황금빛 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앞에 서면 세월이 잠시 멈춘 듯 고요하고,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고전의 숨결을 비춘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며 웃지만, 이곳의 진짜 아름다움은 그 너머에 있다.
학문의 깊이와 세월의 무게가 함께 깃든 공간으로, 조선의 정신과 품격이 여전히 숨 쉬는 곳, 바로 성균관 명륜당이다.
조선의 학문이 살아 숨 쉬는 공간

명륜당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중심 건물로,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을 품고 있다.
왕세자부터 젊은 유생들까지 모여 학문을 배우던 강당이었으며, 이곳에서 수많은 사상과 인재가 태어났다.
1398년 태조 7년에 세워진 이 건물은 당당한 18칸 규모로, 좌우에는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했던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지방의 향교들이 대성전 앞에 명륜당을 두었던 것과 달리, 성균관의 명륜당은 그 뒤편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는 학문을 배우는 공간을 보다 엄숙히 구분하기 위함이었다고 전해진다.

역대 임금들이 이곳을 찾아 유생들을 격려하고, 왕세자가 입학할 때는 문묘에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했다는 사실은 명륜당이 지닌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당 안에는 성리학의 대가 주희의 ‘백록동규’를 비롯해 송준길이 쓴 ‘심잠’과 ‘경재잠’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모든 문구는 학문보다 먼저 마음을 닦으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추녀 밑에 새겨진 ‘명륜당’ 세 글자는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남긴 것으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빛나며 시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400년을 견뎌온 은행나무의 품격

명륜당 앞마당에는 4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다. 하늘로 곧게 뻗은 이 나무들은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각각 암수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노랗게 물든 잎이 바람결에 흩날릴 때면 마치 황금비가 내리는 듯 장관을 이룬다.
가을이면 이 풍경을 담으려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무 아래 서서 올려다보면, 한옥의 기와와 은행잎이 어우러져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아침 햇살이 스며드는 시간에는 잎마다 빛이 맺혀, 명륜당의 고즈넉한 기운과 어우러진다.
사진을 남기고 싶다면 명륜당의 툇마루 근처가 좋다. 대청마루에 앉아 바라보면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럽게 번지며, 오랜 세월이 빚은 여유가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10월 말에서 11월 초, 잎이 가장 선명히 물드는 시기에는 명륜당 전체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
서울 도심 속 무료 문화 여행

명륜당은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안에 위치해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겨울철에는 오후 5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방문 가능하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주차는 가능하지만 요금이 다소 높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15분이면 닿으며, 종로08 마을버스를 이용하면 보다 편리하다.
캠퍼스 내에 위치한 만큼, 차량보다는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는 것이 명륜당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둘러볼 만한 곳도 다양하다. 명륜당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대학로가 이어져 있어, 가을 정취를 만끽한 뒤 근처의 카페나 식당에서 여유를 즐기기 좋다.
조금 더 걸으면 낙산공원에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볼 수도 있다. 학문의 공간이었던 명륜당이 이제는 시민의 쉼터로 변해, 옛것과 새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가을의 서울을 걷다 보면 화려한 단풍길보다 오히려 조용한 공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40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명륜당의 은행나무 아래에서라면, 누구나 잠시 멈춰 서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