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핀 거대한 예술의 아치
통영의 밤을 물들이는 다리
새빛으로 태어난 도시의 상징

짙푸른 바다가 감싸 안은 도시, 통영의 저녁이 유난히 반짝인다. 바람이 머무는 해안가에 이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곡선이 불빛에 물들어 바다 위로 길을 낸다.
낮에는 고요히 흐르는 운하 위의 다리일 뿐이지만, 해가 기울면 그곳은 하나의 캔버스로 변한다.
시간의 흔적을 덧칠하듯 예술이 입혀진 아치는 다시금 통영의 밤을 밝히기 시작했다.
바다 위를 수놓은 예술의 다리

경남 통영시 도심과 미륵도를 잇는 통영대교가 새 옷을 입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개선사업이 마무리되며, 통영대교는 단순한 교량을 넘어 ‘바다 위의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1998년 개통 이후 바닷바람과 염분에 노출돼온 교량은 구조적 안전 보강과 함께 전면적인 디자인 교체가 이뤄졌다.
이번 새단장의 핵심은 통영 출신 추상화가 고 전혁림 화백의 작품 ‘풍어제’를 다리의 아치에 새로 그려 넣은 것이다.
그의 대표작인 ‘풍어제’는 통영 어부의 삶과 바다의 생명력을 추상적으로 담은 작품으로, 붉은색·파란색·노란색이 강렬하게 어우러진다.

통영시는 기존의 파란색 도장을 완전히 벗기고, 녹 제거와 표면처리를 거쳐 화백의 작품 색조를 그대로 재현했다.
하얀색 바탕 위로 쏟아지는 색채는 바다와 섬,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품은 듯 생동감 있게 다리를 채운다.
이번 사업에는 전혁림미술관과 유가족이 참여해 디자인 구상과 시공 자문을 맡았다. 저작권료 없이 재능을 기부한 가족들은 “통영의 상징물이 예술과 함께 살아 숨 쉬길 바랐다”고 전했다.
이들의 뜻처럼 통영대교는 지역의 정체성과 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품은 상징물로 거듭났다.
밤빛으로 피어나는 새로운 통영의 얼굴

통영대교는 통영 운하를 가로질러 당동과 미수동을 잇는다. 길이 591m, 폭 20m 규모의 이 교량은 아치트러스 공법으로 시공돼 구조적 안정성과 미적 균형을 모두 갖췄다.
중앙 140m 아치 구간에는 196개의 경관 조명이 설치돼 있으며, 밤이 되면 푸른빛이 켜지고 조명이 수면에 비치며 럭비공 모양의 반사무늬를 만든다.
그 빛의 흐름이 바다를 따라 이어질 때 통영대교는 마치 하늘과 바다를 잇는 빛의 다리처럼 보인다.
이곳은 통영 8경 중 하나로 꼽히며, 야경 명소로도 손꼽힌다. 특히 야간 경관 점등식 이후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새로워진 다리를 보기 위해 찾고 있다.
당동 해안에서 바라보면 다리의 곡선이 바다 위로 부드럽게 흐르고, 미수동 쪽에서는 조명이 바다 안개에 스며드는 듯 신비롭게 퍼진다. 이 풍경은 낮보다 밤에 더욱 빛을 발한다.
통영대교는 미륵도로 향하는 주요 통로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해저터널과 충무교만이 미륵도로 들어가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통영대교가 그 중심에 섰다.
운하 아래에는 동양 최초로 조성된 해저터널이 있어, 위와 아래 모두에서 통영의 기술력과 미학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사라진 공간

통영대교는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시민의 일상 속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밤 산책길을 걷는 이들이 다리 아래로 비치는 조명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멈추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여행객들은 차창 너머로 푸른빛의 흐름을 따라간다.
주말이면 다리 인근 해안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이들이 늘고, 통영항을 배경으로 한 야경 촬영 명소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통영시는 이번 사업을 통해 교량의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도시의 경관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또한 ‘도심 속 열린 미술관’이라는 슬로건 아래, 앞으로도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예술을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통영의 밤을 비추는 수백 개의 조명, 그 위에 덧입혀진 색채의 이야기. 시간과 예술이 겹쳐진 이 다리는 이제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통영의 새로운 얼굴이자 바다 위의 예술작품으로 거듭났다.
한때 바닷바람에 닳아가던 다리가 다시 빛을 얻은 지금, 통영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반짝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