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의 시간, 돌에 새겨진 역사
산책과 풍경이 어우러진 성곽의 품
사계절마다 빛을 달리하는 길

청주의 바람은 유난히 부드럽다. 산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돌담 너머로 스치는 솔향과 함께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묻어난다.
성벽 위에 내려앉은 햇살은 마치 누군가의 기억처럼 따스하게 남아, 발길을 붙잡는다. 걷는 이마다 속도를 늦추는 이유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수백 년 세월 동안 바람과 비를 견디며 청주의 땅을 굳건히 지켜온, 돌로 쌓인 위대한 성곽 상당산성이 있다.
천년의 성곽, 청주의 상징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자리한 상당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상당현에서 이름을 얻은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둘레가 4km가 넘고 내부 면적만도 22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 성곽으로, 조선시대 석성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꼽힌다.
산의 능선을 따라 굽이도는 성벽은 높이 약 4~5m, 성문은 남·동·서 세 곳에 세워졌다. 남문은 아치형 홍예문 위로 목조 문루를 세운 구조로,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옛 흔적을 전한다.
상당산성은 본래 백제시대 토성으로 시작해,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고 조선 숙종 때 석성으로 다시 다듬어졌다.

특히 1716년, 옛 성터 위에 화강암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은 기록이 읍지에 남아 있다. 성 안에는 장대와 관청 건물, 창고, 연못 등이 있었으며, 군사적 요충지이자 청주 사람들의 안식처로 기능했다.
지금도 성벽 곳곳에는 공사 관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그 시대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 어느새 청주 시내와 들녘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 안쪽 동장대에서는 당시 군사들이 훈련을 하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현재는 복원된 장대가 옛 자리를 지키며, 당시의 위용을 전한다.
천천히 걷는 즐거움, 산성의 하루

상당산성의 매력은 단지 역사에만 있지 않다. 걷기 좋은 둘레길이 이어져 있어 누구나 가벼운 산책으로 성곽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특히 남문에서 출발해 마을 방향으로 걷는 코스는 완만한 오르내림과 함께 청주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인기가 높다.
계절마다 빛을 달리하는 풍경도 발길을 붙잡는다. 여름에는 초록이 짙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성벽 위로 흩어진다.

한 여행객은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라 계절마다 찾는다”며 “성 안 마을에서 파전과 막걸리로 마무리하는 재미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주말 나들이지로 손꼽으며 “드라이브 삼아 오르기에도 좋고, 성을 한 바퀴 돈 뒤 식사하며 여유를 즐기기 제격”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상당산성은 걷기 좋은 길, 탁 트인 전망, 그리고 맛있는 음식까지 모두 갖춘 청주의 대표적인 휴식지로 자리 잡았다.
전통의 숨결과 오늘의 쉼이 만나는 곳

성 안쪽에는 전통 한옥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돌담길을 따라 내려오면 한옥 기와지붕 아래에서 민속요리를 맛볼 수 있으며, 지역 명주인 대추술은 단맛과 은은한 향으로 여행의 여운을 더한다.
또한 상당산성은 문화관광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언제든 해설을 들으며 유적의 의미를 배울 수 있다.
성곽의 구조, 석축 방식, 문루의 복원 과정 등을 듣다 보면 이곳이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청주의 역사를 품은 현장임을 깨닫게 된다.
드라마 <연인>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상당산성은, 조선 인조가 청나라 침공을 피해 피신하던 남한산성의 배경으로 재현된 바 있다.

청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20분이면 닿을 수 있고, 중부고속도로 서청주IC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우암산 순환도로로 연결된다.
주차시설과 무장애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편리하다.
상당산성은 단단한 돌로 쌓였지만, 그 속에는 부드러운 사람들의 삶이 새겨져 있다. 천년을 버틴 돌담은 오늘도 조용히 청주를 내려다보며, 그 아래를 걷는 이들에게 묵직한 평안을 건넨다.
가을빛이 물든 성곽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 시간의 무게가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