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가을을 걷고 싶다면”… 청도 ‘운문사’에서 만나는 단풍길의 여유

가을의 고요를 걷는 산사
청도 운문사로 떠나는 시간 여행
무료로 즐기는 단풍 명소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봄의 초입을 알리던 산사에도 어느새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길가의 은행잎이 금빛으로 번지고, 산자락을 감싸는 공기가 부드럽게 변하는 계절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한껏 분주해지는 이때,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계절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람에 섞인 솔향과 낙엽의 냄새, 그리고 천년 고찰의 고요함이 한데 어우러진 그곳, 청도의 운문사다.

이름만으로도 구름이 머물다 간 듯한 운문사에서는 가을의 끝자락이 더욱 깊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천년의 고요를 품은 산사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운문사는 경북 청도군 운문산 자락에 자리한 고찰로,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융성과 함께 성장한 이 사찰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수행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청도 읍내에서 40km가량 떨어진 산속에 위치해 주변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고요함 속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오래된 송림과 구슬처럼 맑게 흐르는 운문천이다.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청도의 ‘삼청(三淸)’이라 불리는 맑은 물과 산, 사람의 정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길부터 이미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입구에는 웅장한 범종루가 맞이한다. 그 너머로 보이는 지룡산의 바위들은 수백 년 세월을 견뎌온 듯 묵직한 존재감을 뽐낸다.

과거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도 알려진 운문사는, 그 자체로 한 권의 역사책과 같다. 경내를 거닐다 보면 신라와 고려, 조선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여승의 정갈한 손길이 닿은 사찰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으로 유명하다.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이 세워졌고, 현재는 승가대학으로 운영되며 수많은 수행자를 길러내고 있다.

경내의 모든 공간은 깔끔하고 단정하다.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도 스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새벽이 오기 전,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예불 소리는 이곳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청아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전국에서도 손꼽힌다.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방문객이라면 한 번쯤 새벽 공양에 참여해보길 권한다. 잠시 머물며 삶을 돌아보는 그 시간은, 바쁜 일상 속에서 잊었던 평온을 되찾게 한다.

특히 운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 있다. 바로 수령 500년이 넘은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다.

줄기가 땅에 닿을 듯 늘어진 모습이 이름 그대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옛 선사가 마른 가지를 꽂았는데 그 가지가 뿌리를 내려 지금의 거목이 되었다고 한다.

매년 음력 3월 삼짇날에는 이 나무 주위에 막걸리를 뿌리며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도 이어지고 있다.

가을의 색으로 물드는 청도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가을의 운문사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면서도 차분하다. 담장 너머로 늘어선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금빛과 붉은빛으로 어우러져 한 폭의 한국화를 완성한다.

최근 사찰 입장료가 면제되면서 운문사는 더욱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여행지가 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책하듯 경내를 걸으면, 바스러지는 낙엽 소리와 함께 마음속까지 따뜻해진다.

사찰의 중심에는 웅장한 대웅전이 자리한다. 삼세불과 사대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정면에 펼쳐진 지룡산의 능선이 마치 부처의 품처럼 느껴진다.

맞은편에는 사방이 트인 누각 ‘만세루’가 있다. 과거 대중 법회나 여름 불교학교가 열리던 공간으로, 지금도 방문객의 쉼터가 되어준다.

청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청도 운문사)

운문사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과 비로전, 금당 앞 석등 등 보물로 지정된 유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가을의 끝자락, 청도의 운문사는 단풍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 안에 깃든 고요함이 더 깊다.

화려함 대신 정갈함, 소란 대신 고요함이 스며 있는 이곳에서, 여행자는 계절의 마지막 향기를 느끼며 자신만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높고 맑은 하늘 아래, 천년의 시간과 자연의 색이 어우러진 산사에서 잠시 머물러 본다면, 그 자체로 완벽한 가을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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