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흩날리는 밤의 함안
일본 관광객의 발길을 모은 전통의 힘
낙화가 전하는 지역관광의 새 불씨

유난히 고요했던 함안의 밤이 불빛으로 물들었다. 강가를 따라 바람결에 흩날리는 불꽃들이 은하수처럼 흐르며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서울의 화려한 조명이 아닌, 오랜 시간 마을의 손끝에서 이어온 불빛이었다. 그 낙화 아래에는 타국에서 찾아온 이들의 감탄이 겹쳐졌다.
불꽃은 바람에 스러지듯 사라지지만, 그 여운은 오래도록 밤공기 속에 머물며 함안의 이름을 다시금 마음 깊이 새기게 했다.
전통이 관광이 되다

지난 16일, 경상남도 함안 무진정 일대가 오랜만에 인파로 가득 찼다. 한국관광공사와 함안군이 공동 주최한 ‘함안 낙화놀이 스페셜 데이’에 일본 관광객 천여 명이 참여한 것이다.
이번 행사는 낙화놀이를 지역 특화 관광콘텐츠로 발전시켜 외국인 관광객의 발걸음을 지방으로 이끌기 위한 시도였다.
한국관광공사 일본 도쿄·오사카·후쿠오카 지사가 협력한 ‘한정판 낙화놀이 체험상품’은 행사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일본 32개 여행사가 함께 만든 이 상품을 통해 일본 전역에서 관광객이 함안을 찾았으며, 이는 수도권 중심의 여행 패턴을 지방으로 확산시키려는 전략의 첫 결실로 평가된다.
공사는 지난해 일본 주요 여행사 관계자를 초청해 낙화놀이 관광상품화를 검토했으며, 400명 규모의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본격적인 상품으로 선보였다.
전통과 체험, 그리고 지역의 정서를 함께 녹여낸 이번 행사는 단순한 불꽃놀이를 넘어 하나의 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완성됐다.
불꽃 아래 피어난 체험의 장

행사에 참가한 일본 관광객들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낙화놀이의 역사와 의미를 일본어 해설로 들으며 공연을 관람했다.
낙화놀이의 불빛이 줄을 따라 흐를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들은 국악 공연을 함께 감상하며 한국의 전통 예술과 불꽃의 조화를 한껏 즐겼다.
현장에는 전통 체험과 지역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방문객들이 직접 참여하며 함안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가야시대의 복식을 입어보는 한복 체험, 한글로 이름을 써보는 프로그램, 소원을 적는 소원지 체험이 이어졌고, 한국의 전통음식과 낙화주를 맛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불빛이 강물에 비칠 때마다 참가자들은 카메라를 꺼내 들었고, 그 장면은 저마다의 여행 앨범 속에 ‘한국의 밤’으로 남았다.
한 일본인 참가자는 “서울은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런 지방 행사는 처음”이라며 “낙화놀이의 불빛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라 사람의 손끝에서 피어난 예술 같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낙화놀이는 기계가 아닌 손으로 만든 불빛이다. 숯가루를 한지에 싸서 만든 낙화를 줄에 걸고 불을 붙이면, 그 불씨가 바람을 타며 하늘로 흩어진다.
함안 낙화놀이는 17세기 조선 중엽부터 이어져 온 전통으로, 지금도 함안면민 중심의 보존위원회가 그 맥을 잇고 있다.
지방관광의 새 가능성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방한한 일본인 관광객은 230만 명에 달해 지난해보다 15% 늘었다. 이 중 절반 가까이가 네 차례 이상 재방문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
그러나 이들의 발길은 대부분 수도권에 머물러 있었다. 공사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지방 중심의 여행 흐름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국관광공사측은 “일본인 관광객의 관심을 지방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지역 고유의 색을 담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며, “함안 낙화놀이는 그 시작점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밤하늘을 가르던 불빛은 이내 사라졌지만, 그 순간 함안은 하나의 여행지로서 뚜렷이 각인됐다. 오랜 전통이 새로운 관광의 형태로 다시 피어난 것이다.
낙화가 흩날린 자리에 남은 것은 재가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밝히는 또 하나의 불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