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가을이 내려앉은 경주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에서 만나는 평온한 하루
무료로 즐기는 가을의 정취

가을의 끝자락, 햇살은 부드럽게 누워 있고 바람은 노랗게 물든 잎사귀를 천천히 흔든다.
멀리서 보면 마을 전체가 황금빛 물결로 일렁이고, 가까이 다가가면 바닥을 덮은 은행잎이 따스한 빛을 품고 반짝인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지고, 손에는 카메라 대신 추억을 담을 마음이 쥐어진다.
잠시 멈추어 서면 바람결에 섞인 은행향이 전해지고, 이곳이 왜 오랫동안 ‘가을의 명소’로 불려왔는지 알 수 있다. 그렇게 가을은 도리마을의 은행나무숲 속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을 남긴다.
경주 서쪽 끝, 황금빛으로 물드는 마을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리길을 따라가면 아담한 농촌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바로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이다.
본래 묘목 판매를 위해 조성된 곳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빽빽이 심은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그 결과 자작나무처럼 위로 길게 뻗은 은행나무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마치 외국의 숲을 닮은 듯 이국적인 매력을 전한다.
은행나무의 수령은 약 50년 남짓으로,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서 있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숲 전체가 따뜻한 색으로 덮인다.

하늘에서 흩날리는 낙엽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순간, 발아래엔 금빛 카펫이 깔린 듯 장관이 펼쳐진다. 사진작가들이 해마다 이곳을 찾는 이유도 이 풍경 덕분이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총 8개의 군락지로 구성되어 있어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각각의 빛깔을 품고 있다.
숲 안을 거닐면 은행잎이 부드럽게 발끝을 스치고, 고개를 들면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따뜻하게 감싼다.
잠시 벤치에 앉아 있노라면 바람소리와 낙엽소리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완성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무료 단풍 명소’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은 입장료가 없는 곳으로,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다. 특별한 절차 없이 언제든 찾아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주차장은 마을 입구에 마련되어 있으며, 단풍철에는 잠시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가 높다. 은행나무숲 근처에는 특산물 장터와 간이 먹거리 부스도 마련되어 있어 여행객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더한다.
산책로는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좋다. 특히 은행잎이 많이 떨어진 늦가을에는 길 전체가 금빛으로 덮여 있어 걷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가족 단위 여행객은 물론, 사진 동호회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손꼽힌다. ‘드라마 <나쁜 엄마>’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이곳을 찾는 발길이 더 늘었다.

실제로 촬영 당시 배우들이 걸었던 길과 벽화가 남아 있어 드라마 팬이라면 반가운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숲 주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쉼터와 평상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도리 1리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카페 ‘도리뜰’은 특히 인기가 높다.
루프탑에서는 마을과 은행나무숲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커피 한 잔과 함께 황금빛 풍경을 감상하기 좋다.
이 카페는 마을 경로당 건물을 개조해 2층은 주문 공간, 1층은 주민들이 쉬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어 마을의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은행나무숲을 물들이는 가을의 순간들

도리마을 은행나무숲의 매력은 단순히 색감에 머물지 않는다. 숲길을 걷다 보면 나지막한 전통 가옥이 이어지고, 담벼락마다 감성적인 벽화가 자리한다.
벽화길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는 이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오후 햇살이 비칠 때 담벼락과 은행잎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빛의 조화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마을 한편에는 조선시대 건축물인 ‘관인정’이 자리한다. ‘벼를 바라보는 정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주변의 논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풍경을 완성한다.
은행잎이 흩날리는 시기에는 이곳이 또 하나의 단풍 명소가 된다. 정자에 앉아 황금빛 들판과 숲을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곳은 계절마다 색다른 풍경을 보여주지만, 특히 11월 중순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그 시기엔 바닥에 떨어진 은행잎이 많아 숲 전체가 금빛으로 물든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흩날리며 새로운 장면을 만든다. 방문객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숲을 거닐며, 가을의 끝자락을 조용히 만끽한다.
무료로 개방된 이 숲은 화려한 관광지보다 따뜻한 여유가 담긴 곳이다. 특별한 장식 없이도 자연이 빚어낸 풍경만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가을의 황금빛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고 싶다면, 지금이 바로 도리마을을 찾을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