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그대로 멈춰선 마을”… 순천 ‘낙안읍성’, 어른들을 위한 힐링 산책 여행지

역사가 숨 쉬는 고즈넉한 마을
조선의 시간 속으로 걷다
순천 낙안읍성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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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순천 낙안읍성)

바람이 느릿하게 스치는 돌담길 끝, 기와 대신 초가지붕이 나란히 이어진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돌 하나, 흙 한 줌에도 세월이 쌓인 듯한 고요함이 감돈다.

담장 너머로 들려오는 가야금 소리와 장독 사이를 오가는 햇살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의 문을 지나 조선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관광지라기보다 누군가의 오래된 삶터처럼 느껴지는 이곳, 순천 낙안읍성은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를 품은 마을이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성곽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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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순천 낙안읍성 쌍천루)

낙안읍성의 역사는 삼한시대 마한 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때는 파지성으로 불렸고, 고려 시대에는 낙안군의 중심이었다.

조선 태조 6년, 왜구의 침입에 맞서 낙안 출신의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흙으로 토성을 쌓았으며, 이후 인조 때 임경업 장군이 부임해 돌로 된 석성으로 다시 세우면서 오늘의 견고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성은 다른 고을의 성곽과 달리 평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1~2m 크기의 자연석을 네모 반듯하게 다듬어 높이 4m, 둘레 1.4km에 이르는 웅장한 규모로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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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순천 낙안읍성)

동문, 서문, 남문을 따라 이어지는 성벽은 마을 세 곳을 감싸며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곳도 끊기지 않았다.

현재의 낙안읍성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초가 290여 동에 100여 세대가 살아가며,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성곽과 마을이 함께 국가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건축유산을 넘어 조선 시대의 행정 체계와 생활 문화를 온전히 간직한 국내 유일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인의 삶이 살아 있는 민속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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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순천 낙안읍성)

낙안읍성의 매력은 ‘생활이 이어진 유산’이라는 점이다. 용인이나 제주처럼 전시형 민속촌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이 불을 지피고 밥을 짓는 마을이다.

골목길마다 초가지붕이 이어지고, 툇마루 아래에는 장독대와 돌담이 어우러져 옛 정취를 더한다. 남도의 따뜻한 정서가 배어 있는 이곳의 풍경은 방문객에게 자연스러운 친근함을 전한다.

마을 안을 거닐다 보면, 마치 사극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든다. 드라마 청춘월담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이곳은 초가로 이루어진 마을 전체가 무대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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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남 순천 낙안읍성)

성벽 위를 걸으며 내려다보면, 조선의 삶이 고스란히 이어져 온 마을의 모습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마을은 또한 국악의 명맥을 잇는 고장이기도 하여, 예로부터 풍류와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지금까지도 전통음악의 혼이 이어지고 있다.

동편제의 대가 송만갑 선생과 가야금병창의 중시조 오태석 명인이 태어난 곳으로, 지금도 가야금병창 연주와 전통혼례, 길쌈 체험 등 다채로운 민속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짚으로 새끼를 꼬고, 손수건을 천연 염색하며 옛 손맛을 배우는 체험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여행객에게 인기다.

문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열린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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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남 순천 낙안읍성)

낙안읍성은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공간을 넘어, 현재의 삶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적 마을이다. 성벽 안팎으로는 농경지가 펼쳐지고,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배산임수형 명당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풍광 덕분에 마을은 사계절 내내 다른 빛깔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1983년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 낙안읍성은 2011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선’ 중 16위에 올랐다.

또한 ‘국가유산 누림 가족 수학여행지’로도 꼽히며, 역사 교육과 휴식이 함께 어우러진 대표적인 문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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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전남 순천 낙안읍성)

마을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조용히 걷는다. 초가지붕 위로 부드럽게 내리는 햇살, 담장에 기대 핀 호박넝쿨, 그리고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누구나 마음의 여유를 되찾는다.

낙안읍성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교과서’이자, 세대를 잇는 쉼의 공간으로,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공동체의 온기가 지금까지도 숨 쉬며 현대인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조선의 시간 속에서 지금의 삶이 이어지는 곳. 순천 낙안읍성은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마을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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