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 머금은 거목
가을빛으로 깨어나는 은행나무
원주 반계리에서 만나는 금빛 계절

가을은 느리게 내려앉는다. 바람 끝이 선선해지고, 들녘의 색이 옅어질 무렵,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조금씩 빛을 품기 시작한다.
오랜 세월을 품은 그 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며, 가지 끝에서부터 황금빛을 번져 올린다.
수많은 세월을 견딘 존재가 다시 한 번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모습, 그 앞에 서면 시간의 흐름이 잠시 멈춘 듯하다. 이곳은 강원 원주 문막읍의 ‘반계리 은행나무’, 천년의 숨결이 깃든 곳이다.
천년의 세월을 품은 생명의 나무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저리2길 42, 조용한 마을 어귀에 자리한 반계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국내 최고령 은행나무다.
나이는 약 13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33미터에 달하는 그 웅장함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한다.
줄기 둘레만도 16미터에 이르러, 몇 사람이 손을 잡아야 겨우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나무는 고려시대 성주 이씨의 선조가 심었다는 설과, 한 승려가 지팡이를 꽂아 두고 떠난 뒤 그것이 나무로 자라났다는 전설이 함께 전해진다.
나무 속에는 흰 뱀이 살고 있어 지금까지 상처 없이 자라났다고 여겨져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성시해왔다.
또 가을에 잎이 한꺼번에 물들면 풍년이 든다고 믿어 매년 이 계절이면 많은 이들이 풍요를 기원하며 나무 앞을 찾는다.
새단장을 마친 광장, 다시 열린 길

반계리 은행나무 주변은 최근 대대적인 정비를 마치고 새롭게 단장됐다.
원주시청 관광개발팀은 지난 여름부터 이어진 공사를 마무리하며, 관람객들이 보다 편하게 나무를 둘러볼 수 있도록 광장과 진입로를 재정비했다.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길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걷기 한결 수월해졌고, 넓어진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여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한 여행객은 “공사 중이라 못 볼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관람이 가능해 놀랐다”며 “예전보다 훨씬 넓고 깨끗해져서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기 좋다”고 전했다.
실제로 나무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다른 모습이 펼쳐져,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 된다.
가지가 사방으로 30미터 넘게 뻗어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그림처럼 달라지는 모습은 이곳만의 묘미다.
노랗게 물드는 순간, 다시 찾고 싶은 이유

10월 중순 현재, 반계리 은행나무는 머리끝에서부터 조금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다. 완연한 단풍의 절정은 아직이지만, 그 웅장한 자태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잎사귀가 본격적으로 금빛으로 변하는 시기에는 나무 아래로 떨어진 낙엽이 노란 융단처럼 깔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든다.
특히 올해는 새로 조성된 광장에서 그 아름다움을 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노란빛이 나무 끝에서부터 내려와 가지마다 퍼질 때면, 천년의 시간마저 빛으로 물드는 듯하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연중무휴로 개방되어 있으며, 관람은 무료다. 주차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접근이 편리하고, 주변 산책로 또한 잘 정비되어 있다.

문의는 원주시청 관광과(0507-1430-2808)로 가능하며, 방문 전 현장 상황이나 단풍 시기, 광장 이용 관련 안내를 미리 확인하면 더욱 여유롭고 알찬 관람이 될 것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천년의 생명을 품은 존재이자, 세대를 넘어 이어진 마을의 상징이다.
지금 이 계절, 반계리의 하늘 아래에서 서서히 금빛으로 깨어나는 그 나무를 마주한다면,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오늘이 맞닿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