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은 북적임보다 평온함”… 제천 ‘배론성지’, 걷기만 해도 힐링되는 단풍 여행지

무료로 즐기는 가을 단풍 명소
제천의 고요한 순례길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배론성지
제천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제천 배론성지)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산자락 아래, 붉고 노란 잎이 바람결에 흩날린다.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는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사람의 손때가 덜한 길, 느릿하게 걸을수록 마음이 맑아지는 공간. 충청도의 한 자락에 그런 곳이 있다.

시간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싶다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고요히 숨을 고를 수 있는 그곳의 이름을 떠올릴 때다.

신앙의 숨결이 머무는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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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제천 배론성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의 배론성지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신앙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며 자연스레 형성된 신자촌으로, 이 땅에서의 신앙의 씨앗이 자라난 곳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이곳 토굴에 은신하며 백서를 집필했고, 그 뜻을 지키다 순교의 길을 걸었다.

이후 1855년부터 1866년까지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가 세워져 신앙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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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제천 배론성지)

이곳은 또한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자리한 성지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 최초의 유학생으로서, 순교자 남종삼과 함께 한국 천주교사의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다.

현재 배론성지는 원주교구에 속해 있으며, 1970년대 정비를 거쳐 오늘날 순례와 휴식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성지 내에는 황사영 순교 현양탑,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 사제관, 수녀원 등 다양한 시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단풍이 물들이는 평화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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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제천 배론성지)

10월 말에서 11월 초, 배론성지는 그야말로 가을빛으로 물든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이 성당 지붕 위로 내려앉고, 연못 수면에는 풍경이 고스란히 비친다.

특히 배론성당 앞 연못의 반영은 이곳의 대표적인 촬영 포인트로 꼽힌다. 잔잔한 수면 위에 은행나무가 금빛으로 물들면, 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연못 다리’는 단풍철이면 가장 붐비는 장소다. 하지만 주말의 인파를 피하고 싶다면 평일 오전을 추천한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시간,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고요함 속에서도 생동감이 느껴진다.

가족과 함께 걷는 한적한 산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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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제천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입장료가 없고, 주차장도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성지 입구에서 본당까지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이어지며, 천천히 걸어도 1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다.

길이 험하지 않아 아이들과 어르신이 함께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과 무장애 편의시설도 마련되어 있어 접근성이 높다.

산책로 곳곳에는 기도문과 감사의 글귀가 걸려 있어, 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읽다 보면,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바람을 타고 전해오는 듯하다.

성지 안의 작은 카페에서는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종교적 의미를 넘어, 마음의 쉼을 얻는 ‘치유의 장소’로 불리는 이유다.

역사와 자연이 함께 빚어낸 순례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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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충북 제천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천주교의 역사와 가을의 정취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순례자의 발걸음이 닿은 자리에 붉은 잎이 쌓이고, 오랜 신앙의 흔적 위로 햇살이 스며든다.

단풍의 화려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고요함은,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이 머무는 성지’임을 말해준다.

청풍호반과 의림지, 제천 의병유적지 등 인근 명소와 함께 여행 코스로 묶으면 하루 일정이 한층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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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관광공사 (충북 제천 배론성지)

그러나 배론성지에서 만큼은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느릿하게 걸으며, 오래된 나무 사이로 흘러드는 가을빛을 담아보는 것. 그것이 이곳을 제대로 만나는 방법이다.

고요한 신앙의 터전이자, 가을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제천의 배론성지.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여행지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는 무엇보다 값지다.

붉게 물든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마음속에도 한 줄기 따뜻한 빛이 스며드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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