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폭염,
관광지 폐쇄부터 산불·가뭄까지
‘이상기후 경보’

기대하던 유럽 여행이 뜻밖의 상황으로 발목을 잡고 있다. 지금 유럽은 단순한 ‘더위’가 아니라, 관광 일정 자체를 바꿔야 할 만큼 심각한 폭염과 가뭄, 산불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 전역을 덮친 극심한 기상이변은 단순한 기온 상승을 넘어 주요 관광지 폐쇄, 대중교통 중단, 식수 부족과 같은 실생활 차원의 피해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반드시 현지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다.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자 그리스 당국은 관광객 안전을 위해 아크로폴리스 입장을 한낮 시간(오후 1시~5시) 동안 전면 금지했다.

세계적인 유적지이자 관광 필수 코스인 이곳은 그늘 하나 없는 바위 언덕 위에 위치해 체감 온도가 더욱 높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관광객이 현장에서 실제로 쓰러지는 사고를 막기 위한 긴급 조치였다. 같은 기간 그리스 전역에 폭염 경보가 발령됐고, 외부에서 일하는 음식배달 기사와 육체노동자에게는 강제 휴무가 내려졌다.
상황은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서부 지역은 39도에 달하는 폭염에 시달리고 있으며, 포르투갈의 동부 지역은 46도를 넘는 기록적 기온 이후 여전히 39도 안팎의 고온이 이어지고 있다.
폴란드는 폭염과 가뭄으로 비스툴라강 수위가 13cm로 낮아지며 바닥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농업용수와 식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강 대부분에 가뭄 경보가 내려진 상황이다.

폭염과 함께 산불 피해도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세르비아에서는 하루 사이 200건 넘는 산불이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을 입었다.
남부 쿠르슘리야 마을과 동부 보르주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됐으며, 프랑스 남부에서는 산불로 인해 마르세유 공항이 한때 폐쇄되기도 했다.
들불은 고속도로 통행을 막았고, 소방관 1,000명이 진화에 투입됐지만 강풍 탓에 불길을 잡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탈리아도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 롬바르디, 에밀리아로마냐 등 주요 산업 도시에서는 낮 12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야외 근무가 금지되었다.

건설 현장에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노동자 보호 조치가 강화된 것이다. 카탈루냐에서는 뜨거운 차 안에 있던 어린이가 폭염으로 목숨을 잃는 일도 발생했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도 폭염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기온이 치솟자 프랑스 당국은 에펠탑 정상부 입장을 이틀간 금지했고, 전국적으로 1,350개에 달하는 공립학교가 휴교 조치를 취했다. 벨기에 브뤼셀의 대표 관광 명소 아토미움도 내부 기온 급상승을 이유로 입장을 제한한 상태다.
이 같은 극단적인 기후 상황은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유럽의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으며,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유럽 주요 도시들은 1년에 최장 5개월 가까이 32도 이상의 고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테네는 5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145일간, 포르투갈 리스본은 136일간 고온에 시달렸다. 이제 유럽의 여름은 단순한 휴가 시즌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로 바뀌고 있다.
한편, 그리스 크레타섬에서는 산불로 인해 약 5,000명의 주민과 관광객이 대피했고, 일부 주민은 바다로 뛰어들어 구조되기도 했다.

아테네 교외 지역에서도 산불이 발생해 도시 외곽 도로가 마비되었고, 독일 동부 지역과 스페인 카탈루냐에서도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오가는 관광 열차도 폭우로 운행이 중단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후 이상 현상의 원인으로 ‘열돔(Heat Dome)’ 현상을 지목한다. 바닷물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면서 뜨거운 공기를 가두고, 이로 인해 육지 온도가 급상승하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1980년대 이후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단순한 휴가지 검색만으로는 부족하다. 기후 경보, 산불 발생 여부, 관광지 개방 상태까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일정 조정과 대비책이 필요한 시기다.
매년마다 역대급 기록을 경신하는 폭염 덕분에 ‘지금 떠나면 위험할 수 있는 곳’이 유럽이 될 줄은 몰랐다는 목소리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