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병 사려다 계좌 털렸다
10대들이 꾸민 디지털 함정
방심한 순간 돈이 빠져나갔다
낯선 나라로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안겨준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일상과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경계심은 느슨해지기 쉽다. 특히 언어나 시스템이 다른 해외에서는 사소한 방심이 예상치 못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미국 애틀랜타에서는 이를 경고하듯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생수를 파는 10대 청소년들이 결제 시스템을 악용해 순식간에 수백만 원을 가로채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현지에서는 이들을 ‘워터보이즈(Water Boys)’라 부르며, 여행자들을 포함한 일반 시민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QR코드 스캔 한 번에 100만 원 증발
애틀랜타의 한 도로 교차로에서 차량을 몰던 리처드슨 씨는 생수 한 병을 사려다 큰 피해를 입었다.
가격은 2달러. 그는 현금이 없어 모바일 결제 앱인 ‘캐시앱(Cash App)’을 이용하려 했다. 그때 생수를 팔던 10대가 다가와 “대신 입력해주겠다”며 그의 휴대전화를 받아갔다.
하지만 잠시 후, 그의 계좌에서는 1100달러(약 149만 원)가 인출됐다. 단돈 생수값을 결제하려던 순간, 누군가는 그의 모바일 앱을 통해 거액을 빼간 것이다. 리처드슨 씨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앱 운영사에도 환불을 요청한 상태다.
비슷한 피해는 또 있었다. 다른 피해자는 워터보이즈가 건넨 QR코드를 스캔했을 뿐인데, PIN 번호나 지문 인증도 거치지 않고 800달러(약 108만 원)가 자동 인출됐다. “그냥 스캔만 했는데 돈이 빠져나갔다”며 그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기 넘어 절도로… 조직화되는 수법
단순한 금전 피해에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결제를 위해 캐시앱을 실행하던 중 휴대전화를 낚아챈 10대가 도망쳤고, 이를 쫓아 차량에서 내린 사이 대기 중이던 다른 소년이 차량을 몰고 그대로 도주한 사건도 있었다.

애틀랜타 경찰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조지아 공과대학 인근에서 ‘워터보이즈’와 연관된 범죄가 최소 4건 이상 접수됐다. 무장 강도, 가중 폭행, 사기성 절도 등 범행의 수법도 점점 더 대담하고 조직적으로 바뀌고 있다.
현지 언론은 이들이 단순한 길거리 상인이 아니라, 디지털 사기와 절도에 정교하게 연계된 신종 범죄 집단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QR코드? 절대 스캔하지 마세요”
에모리대학교 라지브 가그 교수는 “디지털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QR코드를 악용한 피싱 수법이 늘고 있다”며 “출처를 알 수 없는 QR코드는 절대 스캔하지 말고, 설령 친절해 보여도 타인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제 시 반드시 본인이 직접 앱을 실행해 금액과 사용자명을 확인한 뒤 결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피해자는 사건 직후 틱톡에 당시 상황을 공유하며, “처음 겪는 도시의 낯선 분위기에 방심했다. 내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의 사기였다”고 털어놨다. 해당 영상은 빠르게 확산돼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친절한 미소가, 의심 없는 QR코드 한 번이, 또는 휴대전화를 건넨 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후회로 남을 수 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든, 기술이 발달한 만큼 사기의 방식도 교묘해지고 있다. 여행자의 경계심은 이제 여권만큼이나 필수다.










